지구 최대 카르텔로 꼽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OPEC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다만 최근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긴 하다.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감산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해 내년 4월까지 이어가기로 합의했음에도 원유 가격이 하락했다는 건 이를 잘 드러낸다.
OPEC+는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문제는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수요는 경제 성장이 주춤함에 따라 약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동시에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 OPEC 비회원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제프리 파이어트 미 국무부 에너지 자원 담당 차관보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OPEC 회의를 앞두고 “OPEC의 시장 지배력이 예상보다 약하다”고 말했다. 파이어트 차관보는 “우리가 직면한 전략적 과제는 미국이 에너지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OPEC이나 다른 누구의 행보에 신경 쓰지 않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셰일 혁명에 힘입어 미국은 2018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됐다. 2019년에는 잠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이 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셰일 기업이 생산량 증대보다는 현금 흐름과 주주 수익률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미국의 생산량은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내년 생산량은 1350만 배럴로 올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의 셰일 붐은 OPEC의 석유 시장 장악력을 약화시켰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OPEC과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석유가 2025년 1분기까지 시장의 약 7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팬데믹 직전 60%에서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일부 OPEC 회원국은 생산 제한에 불만을 표하며 할당량을 초과해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공급 과잉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세계 시장에 더 많은 석유를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OPEC이 내년에 감산을 하지 않을 경우 공급량이 수요를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가들은 향후 몇 년간 OPEC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보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서 이들은 2030년까지 OPEC 비회원국이 생산량을 약 300만 배럴 늘리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추가 공급량의 75%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다시 말해, 이번 10년간 OPEC+의 여유 생산능력 중 약 20%만이 필요하단 얘기”라고 설명했다.
/ 글 Jason Ma & 편집 육지훈 기자 jihun.yook@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