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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Atinum①] 하드웨어 나라의 앨리스들’에서 계속

제조업 강국들의 틈바귀에서, 한국은 어떻게‘하드웨어 나라’가 됐을까.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공정 엔지니어링”을 한국 제조업의 핵심으로 꼽는다. 새로운 소재를 만들기 보단, 질 좋고 가격이 합리적인물건을 만드는 데는 재주가 있다는 것. 매해 생산라인을 최적화하고, 조금씩 수율을 높이며, 결국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진 회장은 여전히 공장에서 산다.

삼성전자에서 이력을 시작한 배기식 리디 창업자는 옛 직장의 레거시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 듯했다. 그는 대규모 직영 스튜디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콘텐츠 창작의 질과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 최대 3D 무료 슬롯 머신 의상 제작 툴 ‘CLO3D’을 개발, 운영하고 있는 오승우 클로버추얼패션 공동대표는“(콘텐츠 중개를 넘어) 의상 콘텐츠를 직접 생산, 게임업체에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덕 기자mosadu@fortunekorea.co.kr 사진강태훈

Q 네이버와 카카오가 치고 나가는 상황에서 후발주자 리디는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배기식리디는 새로운 마켓이 나왔을 때 늦게 들어갑니다. 빨리 안 들어가고 가장 늦게 들어가요. 전자책도 빨리 시작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뛰어들 때 이미 30개 업체가 있었습니다. 다른 회사가 하는 걸 지켜본 다음 전략을 수립해요. 퍼스트 무버의 이점도 있지만, 라스트 무버의 이점도 있거든요. 기존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걸 지켜보면 틈이 보입니다. 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안 중요한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강점과 우리가 발견한 기회가 연결되는 포인트를 찾았을 때 과감하게 들어가는 겁니다.

웹툰으로 좁혀 보면,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웹툰 플랫폼서비스가 이미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IP, 그러니까 작품이 귀한 겁니다. 플랫폼보다 작품의 값어치가 커지고, IP로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웹툰 사업은 IP 사업’이라고 정의했어요. IP를 밖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겁니다. 이런 접근이 가능했던 건, 리디가 웹소설에서 2등 사업자, 전자책에선 1등 사업자였기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스토리가 많고, 유저 데이터가 많으니까 이걸 바탕으로 웹툰을 만들자. 그래서 대형 제작 스튜디오를 꾸렸고,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웹툰 IP를 갖게 됐습니다.

오승우작가를 아예 고용하는 건가요?

배기식보통 우리가 아는 웹툰 작가는 소설 작가와 비슷해요. 한두 명이 모든 일을 다 하는데요. 저희는 공정별로 쪼개서, 스토리를 잘 만드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색칠을 잘하는 사람 등을 두고 제작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는 방식이죠.

오승우삼성에서 하듯이?

배기식(웃음)게임스튜디오처럼 만듭니다. 원작이 많으니까 작품을 빨리, 많이 만들 수 있죠.

오승우많이 배웁니다. 저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시도를 아직 못했어요. 지금은 오픈 플랫폼 형태로 하고 있어요. 사용자가 저희 툴을 활용해서 무료 슬롯 머신 의상을 만들고 플랫폼에 올리면, 다른 사용자가 사 가는 겁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서 의상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게임 시장이 워낙 큰데, 공급이 충분하지 않거든요.

배기식그런 다이내믹이 업계마다 있어요. 기회를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과감하게 들어갈 것 같아요. 그렇게 들어가서 네이버, 카카오가 잘될수록 리디도 더 잘되는 구조를 만든 거죠. 잘하는 곳과 맞서기 보단, 어떻게 하면 우리 강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까. 이게 필요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오승우저희도 비슷해요. 게임 시장에서 사용자가 만드는 의상 콘텐츠는 이제 막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희 플랫폼이 사용자 수, 의상 콘텐츠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에픽게임즈(Epic Games)와 파트너십을 맺었어요. 그 회사는 마켓플레이스를 크게 만들고 있어서, 저희 툴이 거기서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경쟁 관계죠. (※ 지난해 5월 클로버추얼패션은 에픽게임즈와 주식을 교환했다. 거래 규모는 수백억 원대로 알려졌다. 클로버추얼패션은 “무료 슬롯 머신패션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제욱(리디와 클로의 사업이) 연결이 안 될 줄 알았는데.

Q 북미 비즈니스는 어떻습니까? 네이버 웹툰은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기식2020년에 만타코믹스라는 웹툰 구독 서비스를 냈어요. 다른 플랫폼은 구독 서비스를 하기 어려워요. 작가 개개인에게 정산을 해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자체 IP이기 때문에 구독 모델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북미나 유럽에선 이미 구독 모델이 익숙했죠. 그런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내는데 집중했어요. 이러한 노력이 현재 만타코믹스의 경쟁력이 되었죠. 지금은 만타코믹스를 통해 한국에서 이미 검증된 좋은 작품을 글로벌 현지 고객에 맞춰 발빠르게 선보여 나가고 있습니다.

Q 콘텐츠 제작에서 AI의 활용도 화두일 것 같습니다.

배기식AI는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영역에 큰 영향을 줄 거예요. 한국에서 AI원천기술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충분히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관련 기술을 계속해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승우저희는 활발하게 쓰고 있습니다. 무료 슬롯 머신 의상을 디자인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AI 기능을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어 수작업으로 하려면 실제 의상을 사진으로 찍고, 의상의 물성도 측정해야 해요. 얼마나 잘 구부러지는지 같은 물성이요. 그런데 사진을 찍어서 AI 모델에 주면 알아서 결과치를 알려주니 편리하죠.

대규모 AI 모델에 대한 준비도 장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AI 모델 성능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데이터인데요. 3D 의상 데이터는 아직 많이 축적돼 있지 않아요. 저희는 데이터를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결국 회사의 실질적인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Q 미래에 두 회사는 어떤 회사로 정의될까요?

오승우지금은 어떻게 콘텐츠를 잘, 빠르게 만들 수 있도록 공정을 개선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떤 고객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의 방향으로 갈 겁니다.

또 재미있는 건 지금 실제 세계의 사례를 말씀드렸는데, 무료 슬롯 머신 세계의 의상 수요가 더 많아요. 무료 슬롯 머신 세계의 의상 데이터가 쌓이고 있거든요. 이게 실제 세계에도 영향을 주고, 또 실제 세계의 의상이 무료 슬롯 머신 세계에도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배기식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고 기술을 잘 활용하는 콘텐츠 회사’가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자책으로 시작한 리디가 웹소설, 웹툰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었어요. 앞으로 리디가 가진 경쟁력 있는 IP를 전세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서비스해 나가는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Q 하드웨어의 나라에서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세 분께서 나름의 방식으로 내놓은 것 같습니다.

벤처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테크 윈터가 오면서 벤처 투자가 급감했죠. 호황기에 빠른 성장을 말하던 투자자들이 지금은 수익성을 강조합니다. 에이티넘은 상황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이 있나요?

김제욱저희는 스케일이 큰 성공을 추구해요. 그러려면 큰 혁신을 해야 하거든요. 투자할 때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 정의할 수 있고,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시기와 상관없이 성장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예요.

다만 지난 몇 년간 성장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됐었죠. 일부 플랫폼 기업들, 그리고 저희에게도 잘못이 있고요. 돈으로 성장한 회사가 많았어요. 이제 그 시절은 갔습니다. 저희도 학습했고요. 성장 방식이 좀 더 건강해야 하고, 프로덕트와 기술로 성장해야 한다. 여기에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수익을 맞춰가면서 성장할 수 있겠어요.

오승우돈으로 성장하면 사람이 경험을 못 쌓아요. 뭐든 시도해 보고 이건 아닌가 봐, 다른 걸 시도하는 사이클을 경험하는 게 스타트업에는 필수예요.

배기식성장성이라는 건 결국 미래의 수익성이라고 생각해요. (수익성과 성장성이 완전히 다른 개념이 아니라) 현재의 수익성이냐, 미래의 수익성이냐의 문제인데요. 시장 상황에 따라 돈이 비싸지는 때엔 현재의 수익이 중요하고, 돈이 싸지면 미래의 수익이 더 중요할 겁니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결정하는 건데, 결국은 수익입니다.

Q 성장성과 수익성은 모순 관계가 아니다.

배기식아니에요. 결국에는 올 웨더(All weather)라고 하죠. 어떤 날씨에도 버틸 수 있는 회사, 어떤 날씨에도 기다려 줄 수 있는 투자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부사장님은 ‘본질’을 자주 언급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제욱투자 업계에서 펀더멘털 언급을 많이 하잖아요. 제품이나 기술 투자라는 게 안 보고 결정할 수도 있어요. AI가 뜨거우니까 AI 키워드 들어간 회사에 투자하자. 혹은 주목받는 회사 구주를 사서 있다가 차익실현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경우에는 회사 담당자를 안 만나고 투자하기도 해요. 창업자도 잘 안 만나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벤처창업의 본질은)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글로벌로 확장하는 거잖아요. 저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그런 기업에 투자하고, 기다려서 같이 크게 성공하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