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반토막이 났다. 서로를 악마화하고 배척한다. 이젠 협경할 때다.
적이냐 아니냐로 구분하는 국제 정세,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는 정치권, 상대를 밟고 일어서기만 하려는 기업들. 팍팍해지는 민생 . 2025년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이대로만 가면 벼랑 끝이다. 해법은 없을까. 포춘코리아가 고(故) 카지노사이트 선생에게 물었다. 답은 “협경하라”였다.
김다린기자 quill@fortunekorea.co.kr
![대한민국이 진영 갈등에 매몰됐다.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3/47300_40220_3954.png)
한국 사회가 대혼란에 빠졌다.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대통령 탄핵 소추와 체포, 구속, 석방, 심판….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사회적 혼란의 불씨는 경제로 옮겨붙었다. 경제연구기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내년 우리나라의 성장률 숫자를 내려 잡았다. 상황을 보면, 상향 반전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주력 수출 품목엔 ‘관세’ 딱지가, 새로 지은 아파트엔 ‘미분양’ 딱지가 붙고 있다. 순위권의 대기업 그룹들이 지갑을 닫고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이름 날리던 지방 건설사들은 줄부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응할 만한 새 성장동력도 없다. 내수 진작, 산업 지원 정책 등 주요 경제 과제의 추진력은 정쟁에 묻혔다. 애초에 여야가 치고받지 않고 협치했더라도 어려운 문제였다. 나라 곳간에 돈이 없다. 지난해 ‘세수 펑크’ 규모는 30조 8000억 원. 2023년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 원에 카지노사이트 2년간 총 87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올해 세입 여건이 녹록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3년 연속 세수 펑크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민생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간신히 안정세를 띠던 물가는 다시 꿈틀거리는 중이다. 지난해 국내 가계빚은 3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가계빚 대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돼 있다는 걸 고려하면 지갑을 열기 벅차다.
우리나라 은퇴세대 다수가 포진한 자영업계는 가게 문도 열기 어렵던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들다. 엄살이 아니다. 2023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폐업 신고한 사업자는 98만 6487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한다. 전체 개인 사업자의 9.5%에 달하는 수치로 가게 10곳 중 1곳꼴로 문을 닫았다. 지난해와 올해, 이 수치가 훨씬 더 악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돌발 상황, 시행착오를 반복할 게 뻔하다. 그래도 한편에선 이번 위기도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리라 믿는 낙관적 시선도 있다. 우리나라 DNA가 그렇다. 최악의 조건과 열악한 위기를 슬기롭게 잘 이겨낸 경험적 저력이 있다. IMF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글로벌 금융 위기, 팬데믹 때도 그랬다.
물론 단서 조항은 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뭉쳐야 한다. 그런데 이는 까다로운 문제다. 국민들이 양분됐다. 대표적인 게 ‘찬탄(찬성 탄핵)’과 ‘반탄(반대 탄핵)’, 두 부류다. 주말마다 한쪽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다른 쪽에선 찬성 집회가 열린다.
한쪽은 촛불을, 다른 쪽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내세운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난 2월 15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선 경찰차 벽을 두고 찬성과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로서로 악마화하며 국정 혼란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갈등은 늘 있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멕시코, 이스라엘에 카지노사이트 세 번째로 높았다.

정치권에서만 입씨름을 벌였던 정책과 기조를 둘러싼 좌우 진영 갈등이 이제 정치권에만 머물지 않은 지 오래다. 사회 각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번졌는데, 문제는 진영에만 너무 매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엔 그 강도가 심상치 않다. 영영 화해하지 못할 거란 부정적 시나리오가 고개를 든다. 분야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했다. 세대, 계층, 성별을 망라하고 다툰다.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반목과 갈등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반으로 갈린 광장은 상대 진영을 향한 분노와 증오만이 남았다. 그사이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망이 붕괴했다. 수습해야 할 정치권은 수습은커녕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서로가 갈등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 지도층을 불신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대중을 대상으로 정부, 기업, NGO, 미디어 등 사회의 주요 기관별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 ‘에델만 트러스트 2024’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사회를 신뢰하지 않았다. 통합 지표인 신뢰도 지표지수에서 조사 대상 28개국 중 네 번째로 지표가 낮았다.
정부와 기업, 미디어를 신뢰하는 지표에서 대부분 하위권을 전전했다. 특히 지도층을 믿지 않았다. 응답자의 62%가 정부 지도층의 신뢰도를 우려했고, 기업가를 향한 우려는 52%로 과반을 차지했다. 탄핵 사태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더라도 극심한 반발과 후유증이 점쳐진다. 이런 상황에선 위기에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해법은 없을까.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고(故) 카지노사이트 선생. 2022년 2월 작고한 이 전 장관은 한국 사회의 몇 안 되는 ‘큰 어른’이었다. 문학박사, 교수, 장관 등 다채로운 이력과 타이틀을 달고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시했다. 한국에 이런 혼란상이 벌어진 건 우리 사회에서 믿고 의지할 만한 이 전 장관 같은 정신적 어른이 부족한 탓도 크다.

시대의 지성으로 손꼽히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년째다. 이를 기리기 위해 책도 나왔다. 어록집 『카지노사이트의 말』(세계사)이다. 100권이 넘는 그의 저작과 인터뷰 텍스트 중 ‘카지노사이트 말의 정수’라 할 만한 글을 추려 한 권으로 엮었다. 포춘코리아가 책을 뒤졌다. 카지노사이트의 지혜를 활용해 어떻게 해서든 해법을 찾아야 했다. 실제로 그의 말 중엔 해법이 있었다. 카지노사이트 선생은 말했다.
협경
코피티션(copetition=협력cooperation+경쟁competition)하는 사람이 콤피티션(경쟁·competition)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
코피티션(Copetition), 즉 협력과 경쟁(cooperation+competition)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경쟁만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거였다. 언뜻 당연한 말 같지만 협경을 꾀하는 건 쉽지 않다. 경쟁자는 서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다만 희소한 몇몇 협경 사례가 실제로 결과가 좋았다는 걸 우리는 복기해야 한다. 한국 재계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한국 고유의 경제 성장 방정식은 재계의 갈등을 부추겼다. 한국의 경제를 일으킨 건 관(官) 주도의 철저한 계획 경제 아래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자본가의 시너지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뚜렷했다. 복잡다단한 순환출자, 총수에게 집중된 제왕적 경영구조, 이익을 고리로 한 정경유착,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혈족 간 다툼….
이런 특수한 배경 속에 얼굴만 보면 서로 으르렁거리던 관계가 있었다. 재계 영원한 ‘맞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대표적이다. 전자제품 시장을 두고 1·2위를 다투면서 성장해 온 사이 앙금이 쌓였다.
갈등은 2012년 폭발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직원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TV 기술을 LG디스플레이에 알려준 혐의로 구속됐고, LG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다. 삼성은 다시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었고, LG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냈다.
정점은 2년 뒤인 지난 2014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 때였다. 당시 최대 화제는 신기술이나 혁신 제품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간의 ‘세탁기 파손’ 진실 공방이었다.
행사장 인근의 한 양판장에 전시된 삼성전자 신제품 세탁기를 LG전자 경영진이 고의로 파손했는가를 두고 볼썽사나운 소송전을 벌였다. 프리미엄 TV 패널로 QLED(퀀텀닷발광다이오드)를 주력으로 밀어왔던 삼성전자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민 LG전자는 마케팅 차원에서도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양측은 지난해 LG가 삼성에 디스플레이를 납품하는 ‘협력’ 관계를 모색했다.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에서 받고 있던 액정표시장치(LCD) 물량을 늘리고, OLED 패널도 다양한 크기 제품을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가 있는데도, LG디스플레이 제품을 쓰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TV 제품의 질을 높이고, LG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단순히 사업적 계산만 따질 일이 아니다. 앙숙이던 양측이 손을 맞잡은 건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면서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름 잡던 한국은 몇 년 전부터 저가 제품 공세에 나선 중국에 점유율 1위를 빼앗겼다. 업계는 양사 협력으로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기분 좋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업은 카지노사이트의 좋은 사례 중 하나다.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3/47300_40224_4336.png)
사업 영역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아 협력을 하지 않던 삼성전자와 현대차도 과거엔 불편한 관계였다. IMF 위기를 버티지 못한 기아차가 법정관리에 돌입하자 두 회사가 동시에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2014년엔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던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서로의 최중요 파트너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핵심 미래 사업인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전략을 추진할 파트너로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글로벌 1위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전자를 통해 스마트폰과 차의 연결을 강화하고 본격적인 모빌리티 서비스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이 밖에도 삼성은 현대차에 차량용 반도체도 공급하기로 했고, 전기차 배터리도 놓기로 했다.
이 밖에도 ‘경쟁 뒤 협력’이 빛을 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아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도 있다. 국내 항공업계를 양분하며 재계 대표적 견원지간이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조만간 한 몸이 된다.
복수 민항사 체제를 유지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함께 고속 성장한 제2의 민항사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모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항공업계 경쟁 강화로 M&A 시장에 쫓기듯 나왔다. HDC현대산업개발이란 새 주인을 맞나 싶었는데 대신 코로나19 팬데믹이란 비극과 맞닥뜨렸다. M&A는 없던 일이 됐고, 속절없이 추락하던 아시아나항공에 손을 내민 건 앙숙 대한항공이었다. 수년의 진통 끝에 지난해 말 합병절차가 마무리됐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세계 10위권의 메가 캐리어로 새출발하게 됐다.
세계 각국도 기업 간, 국가 간 합종연횡이 활발히 벌어지는 중이다. PC 운영체제(OS)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CPU 시장의 라이벌이었던 인텔과 AMD, 차 산업의 전통과 혁신 진영을 대변하던 테슬라와 포드가 파트너십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미국은 수십 년 전 전쟁을 벌였던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최상위 단계로 높여 미중 무역 분쟁의 손해를 최소화하기도 했다. 이렇듯 경쟁은 하되, 원수지지 않는 관계로 윈윈하는 건 협경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사례다.
대한민국이 반토막이 났다. 서로를 악마화하고 배척한다. 자,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권력자들도, 광장의 사람들도, 기업들도, 국민들도 이젠 협경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