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Theory] 미키 김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 인터뷰

카지노 사이트

“굿바이 카지노 사이트.” 미키 김 디렉터(아시아태평양 하드웨어 사업개발 부문 총괄)가 5월31일자로 카지노 사이트을 떠났다. 15년 만이다. 커리어 1막을 마치는그는, 스스로를 “나대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미키 김(한국명 김현유)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UC버클리 MBA 과정을 거쳐 2008년 카지노 사이트에 입사했다. 2016년부터 아태 하드웨어 사업개발부문 디렉터를 맡았다. [사진 강태훈]
​미키 김(한국명 김현유)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UC버클리 MBA 과정을 거쳐 2008년 카지노 사이트에 입사했다. 2016년부터 아태 하드웨어 사업개발부문 디렉터를 맡았다. [사진 강태훈]

“굿바이 카지노 사이트, 그리고 2막 시작.”

미키 김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이하 미키 김)는 지난 5월 초 자신의 SNS에서 퇴사 소식을 전했다. 그는 “온갖 자아실현을 시켜줬고, 네트워크도 넓혀주고, 개인 브랜드를 쌓아줬으며, 경제적 자유까지 이루게 해준, 언제까지나 고마울 회사와 작별한다”고 말했다. 2008년 카지노 사이트에 입사한 그는 2016년 임원에 올랐다. 그가 꼽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임원 직책만큼이나 인플루언서로 잘 알려져 있다. 각종 대학, 기업 강연부터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2년 전부터는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고정 코너 ‘MMM(Manner Maketh Man)’을 진행하고 있다. 안팎으로 종횡무진했던 커리어 1막에서, 그의 무게중심은 무엇이었을까. 5월31일 퇴직을 앞둔 그를 만나 물었다.

1막‘오케이 카지노 사이트’에서 ‘굿바이 카지노 사이트’

미키 김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 [사진 강태훈]
미키 김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 [사진 강태훈]

미키 김은 여러 차례 ‘자아실현’을 말했다. 그가 실현하려 했던 자아는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를 “나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본성을 자아로 빚어내는 데 있어서는 근면한 모습을 보였다. 학부 시절 서로 다른 기업 다섯 곳에서 인턴을 지내며 관심사를 찾았다. 또 실리콘밸리를 경험하고 싶어 삼성전자 입사 5년차에 UC 버클리로 떠났다. 여정의 종착점은 카지노 사이트이었다.

Q왜 카지노 사이트이었나?

매 방학마다 인턴을 했다. 그 결과 IT기업이 가장 재미있었다. 테크를 좋아하니 실리콘밸리를 가고 싶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이제 막 스타트업에서 벗어나 급성장하던 카지노 사이트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MBA 과정을 위해 미국에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도 카지노 사이트과 관련한 책이었다.

Q2008년 카지노 사이트에 입사했다. 첫인상이 어땠나?

2006년 MBA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카지노 사이트 캠퍼스를 갔다. 그때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직원들이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카지노 사이트에 노크를 했다. 인턴 활동을 바탕으로 2008년 결국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30대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Q본사에서 일하다 한국으로 근무지를 옮긴 이유는?

2014년에 왔다. 하드웨어 사업의 아시아 진출을 맡았다. 본사에서 처음 팀을 꾸릴 때 있었다. ‘크롬캐스트’라는 미디어 디바이스로 시작했다. 지금은 카지노 사이트 홈, 픽셀을 개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회사에서 ‘아시아에 누가 가야겠다’고 했고, 그렇다면 내가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Q한국으로 올 당시 서울의 위상은 어땠나?

지금도 IT기업의 아시아 허브는 대부분 싱가포르에 있다. 제가 서울에서 아시아 비즈니스를 총괄할 수 있었던 건, 제가 본사에서 이 역할을 갖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싱가포르로 가겠냐’고 물었을 때 저는 ‘아시아면 서울로 가겠다’고 답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일만 잘할 수 있다면 어디서 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Q‘굿바이 카지노 사이트’ 포스팅, 반응이 어땠나?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모두 반응이 좋았다. ‘내가 잘 살아왔구나’라고 느꼈다(웃음). 응원이 가장 많았고, 질문도 많이 주셨다. 대기업에서 독립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분들께서 물어왔다.

Q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커리어 1막을 끝내자.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자아실현을 하자. 카지노 사이트에서 멋진 프로젝트를 리드했고, 임원도 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자유를 얻자. 카지노 사이트에선 일을 잘하면 주식으로 보상해 주는데, 15년간 받았다. 주가가 15배 올랐다. 내가 생각한 경제적 자유에 도달했다. 그리고 엔젤투자, 유튜브 등 2막에 필요한 재료도 마련했다. 1막을 마무리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Q파이어족과 관련이 있나?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파이어족이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Leisure Class)’과 관계가 깊다. 경제적 자유는 공감한다. 그러나 빠른 은퇴는 아니다. 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 정말 좋아하는 일을 오래할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파이어족: ‘경제적 독립(FI, 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 Retire Early)’를 추구하는 무리를 일컫는 말.

Q카지노 사이트의 변화도 퇴사를 결심한 배경이 됐을 것 같은데?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카지노 사이트처럼 2000년대 빠르게 성장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이제 대기업이 됐다. 전 세계 시가총액 탑5에 들어간다. 대기업이 되면, 관료적인 문화는 어쩔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은 예전처럼 익사이트 하게 일하진 못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일 때가 정말 재미있었다. 카지노 사이트의 성장과 함께한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언제까지나 고마운 회사다.

Q관료적인 문화라고 한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내부 조율에 쓴다. 그런 생각이 지난 1년간 많이 들었다. 과거엔 자유롭게 일했다. 규칙이나 정책, 의사결정을 위한 위계를 신경쓰기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그때는 인원이 1만명 정도였고, 지금은 10만명이 넘는다. 변화는 어쩔 수 없다.

Q카지노 사이트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여러 나라에 신제품을 출시하는 일이었다. 일본 호주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에 제품을 출시하는 다이내믹이 주는 즐거움은 카지노 사이트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컸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한 경험도 무척 즐거웠다. 같은 아시아라도 일본과 호주, 인도는 무척 다른 나라였다.

Q카지노 사이트러, 그리고 카지노 사이트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정말 좋은 회사다. 그러나 회사보다 더 중요한 건 나다. 자아실현과 경제적 자유를 계속 말하는 이유가, 조직만 바라보면 안 된다. 나에 대한 포커스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카지노 사이트에서 했던 일은 결국 놓고 나와야 한다. 남는 건 내게 투자했던 것이다.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 일이 전부인 것처럼 여길 때가 있다. 다른 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

2막ACT2 VENTURES

미키 김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왼쪽)가 유부혁 포춘코리아 편집장에게 자신의 인생 2막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강태훈. 
미키 김 전 카지노 사이트 디렉터(왼쪽)가 유부혁 포춘코리아 편집장에게 자신의 인생 2막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강태훈]

카지노 사이트 문턱을 나서는 미키 김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는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엔젤투자자(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개인 자산가)로 세 번의 엑시트를 해냈다. 그가 나온 유튜브 동영상은 많게는 220만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다. 조만간 개인 채널도 연다. 그는 “커리어 2막의 재료를 마련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Q테크 기업에서의 1막이 끝났다. 1막에서의 미키 김은 어떤 사람이었나?

‘한국 사람도 저렇게 시끄럽게 나댈 수 있구나.’ 실리콘밸리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가 있다. 조용하고 의견 많이 안 내는. 반면 미국이나 인도 분들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나는 그분들 못지 않게 시끄럽게 일했다. 글로벌 회사에서는 자기 할 말을 자신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겸손과 묵묵함을 좋아하는데, 실리콘밸리에서는 바보 되는 길이다.

Q‘나댄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땐 ‘왜 할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자중하라는 말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20대 후반에 MBA 하러 미국에 갔는데, ‘안 나대면 밀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하더라. 표현하는 성격이 여기서는 경쟁력이 될 수 있겠구나. 원래 성격이었는데, MBA 과정을 통해서 훈련했던 것 같다.

Q어떤 훈련이었나?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나댈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의견을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세련된 것이다.

Q그래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물론이다. 눈치를 안 보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 들은 조언 가운데 정태영 부회장께서 해준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들의 오해는 남들의 오해로 남겨두라’는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의 오해를 풀 필요는 없다. 그런 데 신경 쓰다 보면 큰 흐름을 놓친다.


눈치가 없는 것과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천양지차다. 미키 김은 마음속 충동에 못 이겨 나서는 사람들과는 다른 듯했다. 보다 세련되게 나서기 위한 그의 고민은 2012년 쓴 책 《꿈을 설계하는 힘》에서도 묻어난다.

“서로 나서려는 사람들 틈에서 적당한 시점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눈에 띄게 나서서 나를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곰곰 생각하게 됐다.”(73p)

“주변 사람들에게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데서 끝나서도 안 되고, 이 소식이 입소문처럼 퍼지게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직접 제품에 관련된 팀들이나 주요 임원진에게 파트너십이 성사됐음을 알리면서 이 파트너십이 왜 중요하며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이메일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파트너십이 성사되기까지 같이 고생한 사람들과 도와준 사람들을 메일에 일일이 언급해서 공을 같이 나눠야 한다.”(144p)


Q2막의 테마는.

2막에서는 개인 활동에 집중한다. 첫 번째 일로 개인 법인 ‘액트투벤처스 (ACT TWO VENTURES)’을 세웠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영화 제작사 ‘플랜B’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개인 유튜브 채널을 준비하고 있다. 채널명은 고민하고 있고, 여름 오픈이 목표다.

Q올해 만 47세다. 50대의 미키 김은 어떤 사람일까?

라이프스타일이 멋있는 50대가 되고 싶다. 내 20대는 촌스러웠다. 30대는 어설펐다. 40대는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뭘 좋아하는지 알고, 네트워크도 훨씬 튼튼하고, 머리도 가슴도 굉장히 꽉 찼다는 생각이 든다. 50대에는 그걸 업그레이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Q멋있는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

취향이 분명하고, 충분히 즐기고, 같이 즐기는 사람이 주변에 있고. 자기 취향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40대 중반 정도가 되니까 알게 됐다. 그걸 더 키우는 50대가 될 것 같다.

Q퇴사나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은 경제적 자유를 못 가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최대한 많은 것을 1막에서 준비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나는 2막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책(《꿈을 설계하는 힘》)을 쓰면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회사 그만뒀으니까 이제 알아봐야겠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Q미키 김에게 ‘MY THEORY’는

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자.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을 말씀드렸는데, 본질은 나의 행복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는 것도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유부혁 기자,정리 문상덕 기자 mosadu@fortunekorea.co.kr, 사진 강태훈

바로잡습니다.

매거진 카지노 사이트 본문 중'2012년 본사 임원에 올랐다'는 '2016년 임원에 올랐다'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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