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HR Insight] “조용한 퇴사가 왜 문제죠?”

직장인 2명 중 1명은 "가상 바카라와 개인의 성장은 별개"라며 조직 몰래 퇴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4-05-13김나윤 기자

“'조용한 퇴사'가 왜 문제인 거죠? 가상 바카라서 맡은 일만 하면 되잖아요. 가상 바카라서 성장을 하든 회사 밖에서 살 길을 찾든 개인의 선택이죠. 회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회사가 제 인생을 책임져주는 건 아니잖아요.”(중견 기업 재직 중인 30대 A씨)

‘조용한 퇴사’는 실제 퇴사를 하진 않지만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고 그 이상 가상 바카라 기여하려는 의지는 없는 상태를 말한다. 2022년 7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가 “당신의 일이 곧 삶이 아니고 당신의 가치는 성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용어를 설명하는 단어 면면에서 부정적 느낌이 풍겨온다. 하지만 정작 꽤 많은 직장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난 3월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 10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조용한 퇴사 상태인지’ 묻는 질문에 51.7%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이미 스스로를 조용한 퇴사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용한 퇴사 중인 동료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응답자의 65.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우리 직원들 2명 중 1명은 이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니”라며 경영진 입장에서는 꽤 충격적인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 이미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지난해 2월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1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심지어 79.7%의 응답자가 조용한 퇴사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왜일까. 인크루트 조사를 살펴보면 응답자들은 조용한 퇴사를 택한 이유로 ‘현재 회사의 연봉·복지 등에 불만족해서’(32.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가상 바카라서 일하는 것 자체에 열의가 없어서’(29.8%) ‘이직 준비 중이라서’(20.5%)라는 응답도 뒤따랐다.

다른 기관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알바천국에 따르면 ‘정당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 추가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62.7%) 때문에 조용한 퇴사를 결정하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이와 함께 ‘일과 일상의 분리가 필요해서’(37.4%) 또는 ‘일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23.2%) 조용한 퇴사를 다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 바카라와 개인의 성장을 구분하기 위해’(20.3%) 조용한 퇴사를 택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생각을 정리하면 ‘가상 바카라와 개인의 성장은 일치하지 않’고 ‘딱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이야기다. 가상 바카라 입장으로 바꿔 말하면 ‘일한 만큼 주겠다’는 것이니, 사실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견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편에선 물음표가 떠오른다. 가상 바카라서 성과를 내면 연봉 상승과 승진 등 보상으로 이어질 텐데, 이들은 왜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 걸까. 스스로 ‘조용한 퇴사’ 중이라는 30대 직장인 B씨는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거나, 가상 바카라서 열심히 일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 입사했을 땐 꽤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이왕 들어왔으니 가상 바카라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꺼리지 않았고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 맡아서 하려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가상 바카라는 야근에 초과근무를 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워라밸은 일하기 싫어하는 애들이 하는 말이라며 공공연하게 욕하는 윗사람도 있었죠. 이런 경험이 쌓이니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었어요. 그렇다고 성과평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업무 성과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승진이나 보상이 이뤄지는 것 같더라고요. 누구는 경영진과 어떤 관계라 승진했다더라, 연봉이 얼마라더라 하는 식의 소문을 계속 듣게 되다 보니 회사 생활에 회의가 들었어요. 열심히 일하면 뭐 하나, 가상 바카라 기대할수록 나만 손해란 판단이 서자 지금은 조용히 해야 되는 일만 합니다. 솔직히 삶의 질은 훨씬 좋아졌어요."

또 다른 30대 직장인 C씨는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때까지만 가상 바카라 다닐 생각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구조조정을 당한 친구의 사례를 보면서다.

“구조조정으로 권고 사직한 친구를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친구였는데 가상 바카라가 휘청이니 직원들 먼저 내보내는 걸 보고 ‘가상 바카라란 이런 거구나’ 싶었죠.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언제든지 제게도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가상 바카라 밖에서 제 인생을 찾아야겠다 싶었죠. 가상 바카라는 제가 가상 바카라 밖에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때까지만 다니려고 해요. 업무 외 시간에는 주로 이런저런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시도해 보고 있어요.”

가상 바카라 따라 연봉 격차가 커지는 상황 속에서 중고신입으로 이직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조용한 퇴사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2년 차 직장인 D씨의 이야기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연봉이 만족스러운 만큼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 직장에서 계속 머무른다고 해서 커리어 성장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요. 의미 없는 일들로 스스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연봉이나 성장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중고 신입으로라도 큰 기업으로 옮기는 게 낫겠더라고요. 이 가상 바카라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봐야 남들만큼 받기는 불가능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직 때 유리하도록 포트폴리오에 필요한 업무가 아니면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일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과 노력 투입을 최소화하는 거죠.”

D씨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 잡플래닛 ‘컴퍼니타임스’가 직장인 5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기업’(37.8%)이나 ‘연봉을 1.5배 이상 높일 수 있’(31.5%)는 가상 바카라로 이직할 수 있다면 경력을 1~2년(41%), 3~4년(38.5%) 정도는 포기하고 중고 신입으로 이직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용한 퇴사’를 문제로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시선도 있다. 20년 차 직장인 E씨의 이야기다.

“제 할 일도 안 한다는 거면 문제겠지만, 자기 맡은 일은 한다는 거잖아요.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가상 바카라서 맡은 바 이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거죠. 왜 개인이 회사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하나요. 자기 인생에 회사를 어느 정도 비중을 둘 것인지는 개인이 선택할 일인 것 같아요. 일이라는 게 꼭 가상 바카라서만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요.”

이들의 진짜 속마음은 ‘조용한 퇴사’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결국 그동안 가상 바카라 생활을 하며 쌓인 직간접적인 경험에 따라 개개인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직원들은 왜 가상 바카라서 맡은 일 이상의 기여를 해야 하는가. '회사의 성장이 곧 너의 성장이다. 그러니 너의 일에 열정을 쏟아라'같은 식의 강요 아닌 강요를 이들은 더 이상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슬프게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인을 꽤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맡은 일 이상의 기여를 한다면 납득할 만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까. 이에 따른 보상은 주어질 것인가. 가상 바카라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여기에 답할 수 없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닐까.

첫 출근 날, 저마다의 부푼 꿈과 설렘을 가득 안고 사원증 목에 걸었을 이들을 지금 가상 바카라 밖으로 내몰고 있는 건 무엇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자. 회고는 언제나 성장과 변화의 시작점에 서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