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Report] “나의 에볼루션 바카라는 종이에서 끝나야 한다”

에볼루션 바카라가 허영만

2024-04-07김나윤 기자

허영만은 시류에 순류한다. 웹툰, 스크린, TV, 유튜브에서 그를 본다. 동시에 그는 역류한다. 여전히 발상이 떠오를 때면 펜과 종이를 꺼낸다.

진행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 정리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ekorea.co.kr 사진 최근우

에볼루션 바카라가 허영만 화백은 1974년 한국일보 신인에볼루션 바카라 공모전에서 작품 ‘집을 찾아서’로 당선된 이후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이했다. 에볼루션 바카라계 거장이라 불리는 그이지만 허 화백은 여전히 시대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종이 에볼루션 바카라책 자리를 웹툰이 대신 채우고 있지만 여전히 ‘현역’ 에볼루션 바카라가로서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잡으며 흰 종이에 에볼루션 바카라를 가득 채운다.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에볼루션 바카라를 종이에 담아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볼루션 바카라가 곧 시대와 세대를 연결 짓는 매개체이자 소통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2013년 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 앞장서서 시도한 SNS ‘에볼루션 바카라 유료화 서비스’ 역시 대중을 향해 ‘에볼루션 바카라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콘텐츠 생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결심이었다. 2019년 출발한 방송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이듬해 시작한 유튜브 채널 ‘내일 출근 안 해’는 에볼루션 바카라를 넘어 콘텐츠를 접점 삼아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까란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허 화백은 "옛날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고 해서 옛것에만 머물러선 안 돼요. 그러면 뒤처지기 딱 좋으니까요. 필요하면 컴퓨터, 휴대폰도 쓸 줄 알아야죠. 다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나만의 에볼루션 바카라를 계속 지켜가는 게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 같아요"라고 말했다.

허영만 화백(오른쪽)과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가 에볼루션 바카라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사진=최근우]

Q 방송, 각종 유튜브 채널 출연 등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 걸로 아는데요. 그런 틈을 타 에볼루션 바카라 작업도 계속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럼요. 저는 주로 아침 일찍 작업을 하는 편인데요. 당장 특정 작품 연재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스케치나 오며 가며 영감받았던 것들을 매일 2~3시간씩 손으로 그림 그려요. 50년 된 작업 루틴 같은 거죠. 남들은 내가 매일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고 놀러만 다니는 줄 알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사실 오전엔 온전히 제 작업에 집중하고 외부 일정은 대부분 점심 지나서 스케줄을 소화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 많은 작품들을 연재하면서 동시에 문하생들을 가르쳐 왔겠어요.

Q 요즘 웹툰 시대라고 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컴퓨터로 에볼루션 바카라 그리기 일쑤잖아요. 그런데 화백님께선 아직까지 펜 작업을 고수하시는 것 같습니다.

평생 종이 위에 에볼루션 바카라만 쭉 그려오다가 몇 년 전부터는 저 역시 디지털 에볼루션 바카라를 작업하긴 했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에 다리를 걸쳐 놓고 있는 셈이죠. 그래도 여전히 펜 작업을 절대적으로 많이 하고 있어요. 어딜 가나 종이와 펜은 꼭 가지고 다닐 정도고요.

웹툰의 경우 기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볼루션 바카라가로서 고민이 많이 들게끔 해요. 좁은 휴대폰 화면에 에볼루션 바카라를 보여줘야 하는데, 화면 제약상 에볼루션 바카라를 컷당 일일이 편집해 연재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되면 스토리 연출상 장애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종이 에볼루션 바카라가 주는 임팩트가 웹툰을 통해서는 잘 전달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Q 같은 맥락에서 웹툰 작가 이말년의 작품을 보고 에볼루션 바카라가 인생 처음으로 ‘펜을 꺾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으셨다고요.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을 처음 봤을 땐 참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좋아져야 하는데 점점 이상해지고 난해해지더라고요. 작품이 그려진 종이를 흔들면 마치 그림이 툭 떨어질 것만 같고. 저를 포함해 과거 시대를 살아온 에볼루션 바카라가들은 에볼루션 바카라 한 컷을 잘 그리기 위해 며칠을 고생한 게 부지기수였는데 말이죠. ‘이렇게 대충 그려도 에볼루션 바카라가 되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 게 사실이에요.

Q 웹툰이 종이 에볼루션 바카라를 대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시대의 흐름과 같은 것 아닌가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그에 맞는 생활 문법이 생기고 트렌드가 바뀔 수밖에 없잖아요.

웹툰 시장이 막 태동할 땐 오히려 제가 반겼을 정도에요. 왜냐하면 온라인에 에볼루션 바카라를 연재할 경우 지면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에볼루션 바카라 장르가 생겨날 테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웹툰 업계 관계자들한테 하니, 오히려 더 냉정한 반응이더라고요. 상업성이 뛰어난 작품만 연재한다면서요. 그러다가 지금은 아예 스스로 에볼루션 바카라공장이라고 내걸고 있잖아요. 스토리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다 제각기 나눠져 있고. 그건 에볼루션 바카라가를 육성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돈 버는 기능인을 양성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Q 하지만 일찌감치 2013년 ‘타짜2’ 온라인 연재를 하셨고 유튜브 채널도 선제적으로 시작하셨잖아요. 화백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시대를 빨리 읽고 변화를 시도하시는 것 같은데요.

생존해야 하니까요. 올드 스테이지에서만 지척대다가는 삶과 세상에서 뒤처지기 마련이잖아요. 변화에 있어서 항상 한발 먼저 앞서서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다만 외부 환경과는 별도로 제가 에볼루션 바카라가로서 추구하는 몫은 묵묵히 해나가려고 합니다. 필요에 따라 디지털 수단을 활용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시류를 좇지 않으면서 나만의 에볼루션 바카라를 계속 지켜가는 게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 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괜히 젊은 작가들 사이에 껴서 스타일 구기지 말고 에볼루션 바카라 그만 그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엔 내 손이 가만히 있질 않아요(웃음). 눈으로 탁 보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착착 손으로 그려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허영만 화백은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은 물론이고 4050세대도 꾸준히 좋아하는 ‘국민 에볼루션 바카라’가 없단 점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사진=최근우]

비트, 아스팔트 사나이, 타짜, 식객, 미스터Q, 각시탈. 모두 허 화백의 원작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들이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의 1세대로서 그가 소유한 IP를 좀 더 무궁무진한 콘텐츠 확장으로 활용했다면 이른바 ‘한국판 마블스튜디오’가 일찌감치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에 허 화백은 단호히 손사래를 쳤다.

"그런 제안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허영만의 에볼루션 바카라는 종이에서 끝나야 합니다. 허영만을 계속 써먹으면 뒤따라오는 후배들이 얼마나 신물 나겠어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자리를 비워줘야 해요."

Q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에볼루션 바카라 IP 활용 덕분에 오히려 에볼루션 바카라가 지속적으로 더욱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혀 아쉬움은 없으신지요.

옛날 고리타분한 에볼루션 바카라 작품 계속 꺼내봐야 뭘 하겠나 싶어요. 오히려 제게 어떤 작품을 기대하기보단, 그저 시대에서 사라지기 아쉬우니까 그 기능을 영속하기 위해 에볼루션 바카라를 빌리려는 것 아닐까란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은 물론이고 4050세대도 꾸준히 좋아하는 ‘국민 에볼루션 바카라’가 없단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일본은 아직도 도라에몽, 호빵맨 등이 계속 리메이크되면서 중장년층이 여전히 열광하고 있잖아요. 반면 한국은 중학생 시절까지만 에볼루션 바카라를 즐겨 보고 이후부터는 에볼루션 바카라를 거의 찾지 않는 분위기죠.

Q 에볼루션 바카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일까요. 에볼루션 바카라를 위해 소싯적 거리의 투쟁도 많이 하셨다고요. 조용히 그림 작업만 하실 것 같은데 의외로 강직한 면모가 있으시네요.

70~80년대 에볼루션 바카라 시장은 일부 회사의 담합으로 모든 게 이뤄지던 때였어요. 작가들의 원고료가 오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에볼루션 바카라가는 굉장히 자유로워야만 하는데, 정해진 틀 안에서만 행동하라고 하니 오죽 답답했겠습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저를 비롯해 젊은 작가들이 뜻을 합쳐 회사들을 상대로 싸웠죠.

결론적으로는 첫 투쟁에서 우리가 졌지만 그런 식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 싸우다 보니 결국 카르텔이 깨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혈기가 어디에서 나왔나 싶어요(웃음).

Q 20대에 등단하자마 '각시탈'등 작품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단숨에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르셨잖아요. 그런 화백님도 예외 없이 시대의 부당함을 겪으신 건가요.

당시 신인 에볼루션 바카라가들은 한 달에 최대 세 권씩만 그리도록 업계 내 암묵적 규제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니 수입이 늘어나지 않을 수밖에. 때마침 에볼루션 바카라 시장도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한 명, 두 명 작가들이 떠나가더라고요. 나도 아들이 막 태어났었던 때라 세 권 에볼루션 바카라 그리는 수입만으로는 정말 버티기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회사로 이직한 동료에게 ‘나도 취직 시켜달라’고 부탁하며 잠시 직장인으로서 산 적이 있었죠.

Q 그런데 왜 애니메이션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1년 정도 다녔던 것 같아요. 먹고살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옮긴 거였는데, 정말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의 경우 하나의 설정 그림을 한 사람이 그려낸 것처럼 여러 사람이 똑같이 그려야 하는 구조거든요. 앞 작업자가 그림을 못 그리면 뒷사람도 똑같이 못 그려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면 나 역시도 못 그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걸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즈음 일본 에볼루션 바카라 ‘캔디 캔디’가 해적판이라 불리는 불법 복제물로 국내 시장에 풀리면서 다시 에볼루션 바카라 업계가 되살아났죠. 그래서 저도 다시 에볼루션 바카라계로 돌아와 그리기 시작했고.

허영만 화백은여전히 ‘현역’ 에볼루션 바카라가로서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잡으며 흰 종이에 에볼루션 바카라를 가득 채운다. [사진=최근우]

50년 에볼루션 바카라 외길 인생, 그에게 지겹지 않으냐고 묻자 허 화백은 "그렇게 느낀 적이 왜 없었겠느냐"고 했다. 특히 신진 작가로서 왕성한 작품을 하던 때 적잖은 생활고와 에볼루션 바카라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를 힘들게 했다고 털어놨다.

"매년 5월이 되면 어린이날을 기념해 당시 남산에 위치하던 어린이회관에서 불량 에볼루션 바카라, 음란 비디오를 쌓아 놓고 이른바 ‘화형식’을 하곤 했었거든요. 에볼루션 바카라 심의도 더 까다로워지기도 했고.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에볼루션 바카라를 그리는데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한동안 아내가 본인 친구들에게 남편이 에볼루션 바카라가란 사실을 숨겼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자식들에게 세상 최고의 아빠로 인정받는 것과는 온도 차가 컸죠(웃음)."

Q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은 멸치 어장을 성공시켜 정치인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되레 화백님의 아버지께서는 어장 사업을 실패해 아들을 에볼루션 바카라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부친의 사업이 잘됐다면 화백님 인생도 바뀌었을까요.

네, 달라졌을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쯤 어린 마음에 아버지 사업 수완이 좋다고 생각하고 고액 과외 받아 미대에 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죠. 그런데 정작 아버지께서는 제게 “너 미대 못 간다”는 거예요. 사업이 어려워져서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미대에 가겠다고 고집부리기보단 ‘그래? 그럼 에볼루션 바카라 그리자’라고 마음먹었어요. 왜냐하면 에볼루션 바카라 보는 걸 워낙에 좋아했으니까.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 책상에 앉아 에볼루션 바카라만 그리니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에볼루션 바카라로 먹고 살 수 있겠냐”고 걱정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을 애당초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에볼루션 바카라 그리기밖에 없었으니까요. 다른 선택지에 대해 고민 자체를 안 했던 거죠.